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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운영진 on 2024-12-22
“지금 회사를 창업한 게 2016년 10월이었고, 처음 안과 급속냉각 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건 그보다 빠른 2014년 미국 미시간대 시절입니다. 올해 9월 말에 미국 식품의약품(FDA) 승인을 받았으니 꼬박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김건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리센스메디컬은 지난 9월 말 안과용 냉각마취기기인 ‘오큐쿨’로 국내 의료기기 기업 중 처음으로 FDA의 드 노보(De Novo) 승인을 받았다. 드 노보는 비슷한 선행기술이 없는 신기술 의료기기에 적용되는 FDA의 허가 제도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획득하는 510k가 비슷한 허가 기술과 비교해 간단한 검증만으로 진행한다면, 드 노보는 선례가 없는 기술에 적용하기 때문에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과정이 훨씬 복잡하다.
김건호 리센스메디컬 대표 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안과용 급속마취기기 '오큐쿨'로 지난 9월 말 미 식품의약국(FDA) 드 노보 승인을 획득했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드 노보 승인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리센스메디컬
김 대표는 “드 노보 승인을 받으려면 신기술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용처도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까다롭다”며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1년에 10건 정도만 승인을 받을 만큼 미국에서도 쉽지 않은 허가제도”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김 대표의 전공이다. 의료기기 기업인 만큼 창업자의 전공도 의학이나 바이오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김 대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기계공학과 교수가 어떻게 안과용 냉각마취 의료기기로 FDA의 벽을 넘은 걸까.
김 대표는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시 리센스메디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기계공학은 열을 다루는 학문”이라며 “열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결국 냉각 기술인데, 열전소자(熱電素子)의 냉각 기능을 이용해 안구를 급속 냉각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기술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열전소자는 전기를 흘리면 온도가 변하고, 반대로 온도가 변하면 전기가 흐르는 장치다.
김 대표가 10년에 걸쳐 개발한 오큐쿨은 안구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냉각 마취하는 기술이다. 황반변성이나 당뇨망막병증 같은 안과 질환 치료 IVT시술을 할 때, 지금까지는 마취제를 바르거나 주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주사를 맞은 뒤에 실제 마취가 되기까지 5~10분 정도가 걸렸고, 항균을 위해 베타딘 같은 소독제에 오랜 시간 노출시키기 때문에 환자가 따갑고 불편함을 느낀다.
리센스메디컬의 오큐쿨은 마취제가 아니라 안구에 접촉하는 것만으로 순간적으로 섭씨 영하 15도까지 온도를 낮춰 냉각마취를 한다. 시술 부위에 정확하게 마취가 가능하고, 걸리는 시간도 단 10초에 불과하다. 덕분에 시술 시간이 기존의 10~15분에서 1~2분으로 단축돼 화학물질 노출도 최소화할 수 있다.
리센스메디컬이 개발한 안과용 급속마취기기 '오큐쿨'. 기존에 쓰이던 유리체내강 주사술(IVT)과 달리 안구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냉각마취하는 기술이다./리센스메디컬
김 대표는 “미국 현지 임상의사가 IVT 시술 마취를 냉각마취로 대체할 수 있는 지 물어봤는데, 냉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며 “FDA의 승인을 얻기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내 10개 안과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안전성과 유효성, 환자들의 만족도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큐쿨 임상시험에 참여한 휴스턴 망막 컨설턴트 병원의 전문의 찰스 와이코프(Charles Wykoff) 박사는 “약으로 하는 마취는 신경을 통해 화학적으로 확산하는 시간이 필요한 반면, 냉각마취는 물리적 냉각에 의해 활성화되기 때문에 마취 효과가 훨씬 빠르게 발현된다”며 “기존 시술보다 대기 시간이 줄고 회복도 빠른 점 등 다양한 이유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냉각마취를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리센스메디컬은 오큐쿨 외에 피부과용 정밀 냉각기기인 타겟쿨로 이미 매출을 올렸다. 타겟쿨도 오큐쿨처럼 급속 냉각을 하는 의료기기로, 주름을 펴고 빈 곳을 채우는 보툴리눔 독소나 필러 등으로 피부과 시술을 할 때 환부를 급속 냉각해 통증을 줄인다.
김 대표는 여기에 더해 급속 냉각 기술을 약물전달용 의료기기에 접목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피부를 통해 약물을 몸안에 전달하는 ‘경피약물전달시스템(TDDS)’ 시장이 굉장히 큰데, 아직까지 극저온 냉매를 이용해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은 없다”며 “극저온 냉매를 이용하면 약물을 총알처럼 가속해서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리센스메디컬은 2025년을 성장의 원년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FDA 승인을 얻은 오큐쿨의 미국 시장 판로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국내에서는 내년 중 주식시장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리센스메디컬은 700억원 누적 투자를 유치한 상태다. 김 대표는 “국내에 직원 60명이 있고 미국 지사에도 5명이 있다”며 “지금은 양산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